[나쁜 손] 요가 학원 원장의 말 못할 고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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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요가학원>
 
* 이 이야기는 성심리상당소를 운영하는 여성 치료사의 관점에서 서술한 [소설]입니다. 소설에 등장하는 내담자의 이야기는 허구일수도 사실일수도 있습니다.
 
그날은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커피 3, 프림3, 설탕 3. 완벽한 비율의 달달한 다방 커피를 마시고 있던 나는 대한민국 평균 아저씨스럽게 생긴 남자가 상담소를 찾아왔다.
 
“저는 요 앞에서 요가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박수호라고 합니다. 나이는 42세이구요. .다름이 아니라, 이런 거 말씀드려도 될지..."
 
내담자와 대각선 옆으로 가까이 앉아 친근하게 상담하는 분위기를 추구하던 나. 그의 맞은 편에 있다가 옆으로 자리를 바꿔 앉자 그는 흠칫 놀라는 눈치다.
 
“당황하셨나요? 이렇게 가까이 앉고 눈을 보며 얘기해야 마음도 열고 얘기를 할 수 있죠.”
 
“선생님, 너무 미인이신 분이 가까이 앉으시길래 조금 당황했습니다. 여기 분위기 아주 좋네요. 하하하!”
 
공허하면서도 흑심이 보이는 웃음을 연타 날리던 그. 손을 잠깐 내 허벅지 쪽으로 뻗는 듯싶더니 이내 다시 고이 가져간다.
 
‘헉... 뭐지? 이 사람. 혹시? 아무래도 접촉마찰 장애가 의심되는데....’
 
* 접촉마찰 장애(Frotteuristic Disorder)
성도착 장애의 하나로 동의하지 않는 사람에게 자신의 성기나 신체 일부를 접촉하거나 문지르는 행위를 반복적으로 나타내는 경우이다. 이러한 행위는 체포될 염려가 없는 밀집된 지역(예: 대중교통수단,붐비는 길거리)에서 행해진다. 상대방의 허벅지나 엉덩이에 자신의 성기를 문지르거나, 손으로 상대방의 성기 또는 유방을 건드린다. 접촉행위 중 피해자와 비밀스러운 애정 관계를 맺게 된다는 상상을 하곤 한다. 발병은 보통 청소년기에 시작된다. 대부분의 행위는 15~20세 사이에 발생한다.
 
- '이상심리학의 기초', 권석만 지음

머릿속 퀘스쳔마크를 그리기를 몇 번, 이내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편하게 얘기하세요. 박수호 씨. 어떤 고민이든 다 말씀하셔도 됩니다. 저는 수호 씨에게 그 어떤 비난이나 충고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저 편안히 들어드리고 어드바이스 해드릴게요.”
 
“네... 사실은 제가 결혼한 지는 3년 정도 되었습니다. 노총각인데 결혼을 못하고 있자 집에서 부모님께서 베트남 색시를 짝지어주셨죠. 와이프를 다행히 잘 만난 거 같습니다. 아이 낳고 산후조리 끝나자마자 요가학원에 와서 서무를 봐주고 회원관리를 맡아 하고 있어요.
 
“그렇군요. 행복한 가정을 이루신 것 축하드립니다. 그런데 혹시 아내와의 성생활에 어떤 문제라도..."
 
“아뇨, 그런 건 아니구요. 이건 아주 오래 전부터 그런 건데, 제가 조금 특이합니다. 제 손을 맘대로 조절할 수 없어요.”
 
“손을요?”
 
“네, 사실 사춘기 때부터 시작된 병이 있어요. 학창 시절에 통학 버스가 무지 만원이었는데 어느 날 여학생의 뒤에 섰는데 몸이 접촉되는 느낌이 들자 발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말 그대로 부비부비를 하게 되었죠. 그 이후로는 아침마다 버스에서 부비부비하는 걸 무지 즐기게 되었고., 그 낙으로 학교를 다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그러다 점점 더 과감해져서 나중에 손이 허벅지로 가서 여학생을 더듬기도 하고 가슴을 더듬을 때도 있었구요. 그렇게 학창시절을 보내고 성인이 되어서도 제 행동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지하철이나, 버스, 붐비는 거리 갖리지 않았죠. 제가 명동을 무지 좋아라합니다. 이유는 단 하나, 붐비니까요. "
 
“그러셨군요. 계속 그런 행동을 반복해오셨다면 혹시 치한으로 몰려 경찰서에 가게 되거나 들켜서 곤란해졌던 적은 없으셨나요?
 
“아, 물론 있었죠. 한 번은 어떤 여자가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경찰서 가자고 한 적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거의 완벽을 추구합니다. 요즘 휴대폰 많잖아요. 휴대폰으로 증거를 촬영하지 못하게 정도로 붐빌 때, 주로 밤 10시쯤 2호선이 그렇습죠. 그럴 때는 어쩔 수 없이 밀착되니까 여자가 이상한 걸 느끼면서도 피할 공간이 없게 되죠. 그런 곳에서 소리를 지를 정도의 용기를 가진 여자는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 여자는 피할 공간이 있으면 다른 칸으로 간다든지 하면서 조용히 자리를 이동하는 편이에요. 대놓고 "아저씨, 저 만졌죠?"하는 여자는 거의 없죠. 있어도 제가 무슨 소리를 하냐고 적반하장으로 나오며 증거를 요구하면 창피해서 울다가 내려버립니다.“

난 박수호씨의 이토록 치밀한 나쁜 손 행동에 놀람을 금치 못하였다. 이럴 때 상담사는 많은 고민에 휩싸인다. 여자라는 개인적 입장에선 이 나쁜 사람에게 너무나 화가 나서 소신껏 내지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만약 내담자에게 비난을 하거나 화를 내버린다면 그는 더 이상 자신을 오픈 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그럴 수 없는 것이다. 어떻게든 내담자의 내면을 잘 끌어내서 치료해야 하는 것이 상담사의 본분이며 사명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가져온 습관이라 거의 만성화되셨군요. 요즘도 비슷하신가요?‘
 
“네... 큰일입니다. 10년 전쯤 인도에 가서 정통 요가를 배워왔습니다. 인도에 있을 때는 요가로 수행해서 그런지 그런 버릇이 없어졌나 싶었습니다. 인도에서 돌아와 요가학원을 냈고 처음부터 선생 안 쓰고 그냥 제가 수련생들 직접 가르쳤거든요. 딱히 규모가 크지는 않아서요. 그런데 그 버릇이 다시 도진 겁니다.“
 
“박수호 씨가 여자들을 만지던 버릇 말씀이세요?”
 
“네, 맞습니다. 저희 학원엔 여자 수련생들이 대부분인데. 요가 가르칠 때 자세 교정해 주면서 그녀들을 만지게 되니 나쁜 손 세포가 다시 부활하고 말았지 뭡니까. 한 번은 와이프가 와서 울면서 묻더군요, 동네 아줌마한테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며. 그 아줌마가 ‘찌푸네 아저씨가 요가 가르치면서 막 몸을 만진다네’라고 했다면서. 아니라고 딱 잡아떼며 자세 교정해 준거라고 둘러댔지만 더 이상 이러다간 흉흉한 소문도 그렇고 회원 한 명이 또 제가 자세 교정해주는 장면을 몰래 촬영한 동영상을 갖고 있다고 돈을 요구합니다. 이 영상이 공개되면 요가학원은 망하는 거겠죠? 회원들도 모두 탈퇴할 거구요.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니 아주 미쳐버리겠습니다. 선생님, 제가 달라질 수 있을까요?”
 
나는 내심 걱정이 되었다. 이상심리학에서는 성기능 장애와 성도착 장애, 성불편증 등을 하나로 예쁘게 묶어서 ‘성(性)장애’로 통칭한다. 성기능 장애(조루, 발기부전, 지루, 불감증 등)는 치료가 비교적 용이하다. 그러나 성도착 장애(관음증, 노출증, 접촉마찰 장애, 피학 ,가학 등)는 만성화가 되었다면 여간해선 치료가 어렵다는 임상사례들이 있다.
 
성인이 되면서 몸의 키만 자라는 것이 아니다. 의식의 키도 함께 자라나면서 자연 치유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지 않다면  정신병리학적 입장에서는 더이상 치료가 '어렵다‘고 본다. 가히 성장애애 계의 암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이 어디 쉽게 바뀌나? 무의식적으로 만성화된 행동은 성인이 되고 나면 이미 고치기가 너무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누구인가. 뭐든지 말만 하면 해결해주는 만능 성치료사 ‘루나’ 아닌가. 치료가 되든 안 되든 일단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키던 내담자 박수호 씨와 나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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