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손] 요가 학원 원장의 말 못할 고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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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간기남>
 
* 이 이야기는 성심리상당소를 운영하는 여성 치료사의 관점에서 서술한 [소설]입니다. 소설에 등장하는 내담자의 이야기는 허구일수도 사실일수도 있습니다.
 
박수호 씨의 심리 검사를 실시했다. 설문지보다 비교적 가볍게 내담자의 심리를 읽어낼 수 있는 모래놀이 심리 치료를 통해 검사했다. 모래놀이 치료는 특히나 아동들이 좋아하는 심리 치료다. 모래로 가득한 상자 안에 각종 조그만 피규어를 장식하고 물도 부어보기도 하여 심리진단을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부드러운 모래의 촉감을 이용하여 내담자의 심리 치료까지 되는 비언어적 치료로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방법이다. 촉각이 발달한 박수호 씨를 위한 맞춤진단법이었다.
 
“자, 수호 씨가 지금 뭘 하고 싶은지 이 상자 안 모래를 가지고 마음대로 만들어 보세요. 물도 사용하실 수도 있고 여기 피규어 인형들로 수호 씨를 표현하여도 좋습니다.”
 
박수호 씨는 처음에는 아이들 노는 놀이를 왜 가져다주나, 하는 눈으로 멀뚱멀뚱 쳐다만 보다가 이내 물도 붓고 모래 언덕도 쌓으며 진지하게 열중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뚝딱뚝딱 모래 상자를 완성했다.
 
심리 분석 결과 피규어와 작품이 오른쪽 아래로 치우쳐 있는 걸 보니 세상과 고립되고 동떨어지고 싶은 박수호 씨의 우울한 심리를 반영하는 듯 보였다. 가운데 물을 부어 웅덩이를 파놓고 물을 바라보고 있는 자아를 대변하는 피규어는 그 안에 들어가 꼭꼭 숨어버리고 싶다는 박수호 씨의 수치심으로 인한 회피 욕구를 나타내고 있다.
 
스스로도 잘못된 일인 걸 알고 이제는 그만하고 싶지만 그만 두지 못하는 나쁜 손 때문에 곤경에 처하게 되었고 나쁜 손 영상공개로 협박하는 요가 회원에게 돈까지 입금해줘야 하는 사태이다 보니 가족에게도 고민을 털어놓지 못하고 스스로 끙끙 앓고 있는 상황에서 도피하고만 싶은 심리로 분석되었다. 일단 수호 씨의 내면을 꺼내보았으니 이제 내 몫인 치료에 들어가기로 했다.
 
“수호 씨, 수호 씨는 아내 찌푸를 사랑하죠? 딸 지연이도 사랑하구요.”
 
“네, 남들은 베트남 색시라고 곧 도망갈 거라고 많이들 우려했었는데 우리 찌푸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저만 바라보고 열심히 사는 정말 착한 아내죠. 그렇지만 동영상이 공개돼 그동안 아내가 들어온 소문에 확신하게 되면 저를 떠나 베트남으로 돌아가는 최악의 상황을 상상합니다. 지연이를 데리고 가겠죠? 하루아침에 혼자 남겨지는 악몽을 꾸다가 소리를 지르며 잠에서 깰 때도 있어요.”
 
“아내가 지연이를 데리고 말없이 고국으로 돌아갈까봐 걱정이 되시는 거군요.”
 
“네, 맞습니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그것입니다. 대규모 성추행 소송이야 뭐 몇 년 살다 나오면 되지만... 아내가 도망갈까봐 그게 제일 두려워요.”
 
“그러시겠군요. 충분히 공감합니다.”
 
공감과 지지의 따뜻한 표정과 제스쳐를 그에게 보여주니 불안에 떨던 그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지는 듯했다. 아내와 아이를 사랑하는 평범한 가장이라는 걸 나 또한 감정의 전이를 받아왔기에 충분히 알고 있었고, 수호 씨의 악몽과 괴로움들에 가슴 저편이 아려왔다.
 
나쁜 손에 나쁜 맘까지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소송 걸려 옥살이 하는 게 제일 걱정이었을 것이고, 이 나쁜 손에 대한 죄책감을 갖지도 않았을 것이다. 성 도착자들은 스스로 심각성을 크게 느끼지 못한다.
 
대부분 주변인이나 경찰에 의해 이끌려서 상담 치료를 받으러 온다. 이렇게 수호 씨처럼 직접 SOS를 요청하는 경우는 매우 드문 케이스다. 그들은 그냥 본인의 성적 취향이 특이할 뿐이라고 생각하고 치료도 필요 없다고 느끼며 누군가에게 현장을 잡히면 재수 없이 걸렸다고만 생각한다.
 
그래서 성 이상행동 장애는 고치기 가장 어려운 암(癌)적 존재라고 굳이 표현하는 것이다. 평생 개 버릇 남 못 주기에 그러나 최소한 수호 씨는 달랐다.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고 스스로 손목을 자르려고 시도했을 만큼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고 잘못된 행동이라는 걸 인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필사적으로 가정을 지키고 싶어했다. 이럴 때 심리 치료가 위력을 발휘한다.
 
“수호 씨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아내가 알게 되어 떠나는 거죠. 알겠습니다. 그러면 일단 아내분을 따로 이쪽으로 오시라고 하는 게 어떨까요. 수호 씨의 손 얘기는 일체 꺼내지 않겠습니다. 예약을 잡고 일단 오늘은 돌아가시구요. 맘 편하게 계세요. 걱정하시는 최악의 상황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그 여자회원은 얼마를 요구하나요?“
 
“아, 네. 그럼 일단 선생님만 믿겠습니다. 와이프보고 다음 주에 저 대신 상담을 오게 하죠. 그리고 그 여자회원은 큰돈은 아닙니다. 천만 원을 요구하네요. 그 정도야 뭐, 줄 수 있습니다.“
 
“네, 그렇지만 그 여자 회원분도 협박죄가 성립될 수 있고 불법 동영상 유포로 법에 저촉되는데 처벌 안 해도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물론 결정은 수호 씨가 하시는 겁니다만?”
 
“네, 괜찮습니다. 그동안 저 때문에 알게 모르게 수치심을 느꼈던 회원들에 대한 보상금이라고 생각하려구요. 그리고 저도 이렇게 한 번 벌을 받아야 돈 생각 나서라도 다시는 그러지 않을 것 같아요. 저에게도 경각심이 드는 게 필요하니까요. 이렇게 인생공부 제대로 한번 하는 거죠. 수업료 톡톡히 치르고요.”
 
“그렇게 생각하신다면야 더 이상 저도 말씀 안 드리겠습니다. 그러면 요구하는 대로 주시고, 대신 영상 파일은 확실히 지우는 거 그 자리에서 확인하시구요. 복사해 두었다가 나중에 또 협박할 우려도 있으니 문서나 각서를 적어서 받아두시고 공증까지 해두세요. 후에 뒤탈이 없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회원 탈퇴하는 걸 조건으로 하시고, 다시는 수호 씨 소문을 낸다거나 협박을 하거나 수호 씨에게 안 좋은 영향이 가지 않도록 잘 처신하셔야 합니다.”
 
“네, 물론입니다. 저도 철두철미한 구석이 있는 사람이니까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선생님.”
 
상담소를 나가는 수호 씨의 뒷모습이 한결 가벼워 보였다. 내담자가 이렇게 두말하지 않고 비밀이 알려질까 가장 두려워하는 대상인 와이프를 나에게 보낸다는 것은, 그만큼 수호 씨와 나와의 사이에 라포(신뢰)형성이 이미 두터워졌다는 증거라 여겨져서 나도 내심 흐뭇했다. 다음 주에 있을 수호 씨의 아내와의 상담을 기다리며, 외국인에게 이런 것을 어떻게 납득시키고 이야기를 잘 풀어나갈지 걱정이 내심 되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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